6. 여섯 번째 비밀_아담의 잠

여섯 번째 비밀:
아담의 잠
(왜 하나님은 아담을 잠재운 후, 갈비뼈를 뽑아 이브를 만드셨을까?)
(불면증의 특별한 치유법)

왜 하나님은 아담을 잠재운 후,
갈비뼈를 뽑아 이브를 만드셨을까?


말보다 쉬운 것은 없다고 합니다. ‘말로 하기 쉬운 말중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입니다.

꽤 오래전에 구글(google)에서 가장 많이 돕는 사람이 이기는 게임(Project 10^100)’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디어를 공모한 적이 있었습니다. 가장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하면 우승하는 게임이었습니다.

평소 발명과 아이디어에 관심이 많았던 저는 구글에서 아이디어를 공모할 당시에 소위 황금률(黃金律, golden rule)로 알려진 예수님의 말씀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황금률로 알려진 예수님의 말씀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에게 대접하라.”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근간으로 한 아이디어라면 사람들을 가장 많이 도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아이디어를 정리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인간은, 종교 유무에 상관없이, 뭔가를 간절히 구할 때, 일반적으로 양손을 모으거나 마주 잡습니다. 양손을 모으거나 마주 잡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내면, 이웃과의 관계, 온 세계에 평화를 구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속담처럼 인간은 일반적으로 이웃이 (원수는 말할 필요도 없이) 잘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 근본적인 이유는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 그리고 남을 자기 밑에 두고자 하는 교만 등, 인간의 부패한 마음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인간의 내면을 바로 잡을 때, 근원적으로 그리고 가장 광범위하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마음은 스스로 교정할 능력이 부족하므로, 어떤 행동을 통해 마음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이는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것이다.”라는 명언에 근거합니다. 이 명언의 뜻은 행복할 때 웃지만, 웃는 행위로 말미암아 행복해질 수도 있다.”라는 것입니다.

행복을 위해 웃는 행위와 유사한 행동이 있습니다. 기독교 신자들 또는 불교 신자들이 기도할 때 취하는 모습처럼, 양손을 마주 잡거나 양손을 모으는 행동입니다. 양손을 마주 잡을 때 (또는 양손을 모을 때) 대개는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따뜻해집니다. 이때, 우리는 의식적으로 자신과 이웃이 잘 되기를, 특히 이웃이 잘 되기를 마음에 꾸준히 새길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랜 마음의 습성과 이기적인 자의식 때문에 내면의 거센 저항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웃을 적대적 경쟁자로 생각할 때는 시기, 질투, 초조, 불안, 경쟁하고자 하는 등의 마음이 생깁니다. 그러나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우호적 협력자(동행자)로 생각할 때는 협력과 성장, 기쁨, 희망, 즐거움, 행복 등의 마음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이런 마음이 생길 때, 우리는 내가 잘되기를 바라듯이 이웃도 나처럼 잘되기를 바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이웃은 내가 미워하는 사람 또는 원수까지 포함하는 이웃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매일매일 양손을 모으고 잠깐이나마 이웃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꾸준히 품는다면, 내 마음속에서 원수를 포함한 모든 이웃이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나와 이웃이 따로 있을 때는 그저 독립적인 개개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웃이 진정한 친구, 협력자가 될 때, 이 둘 사이에는 2배가 아닌 ‘11’(여기서, ‘11’은 이웃과 내가 함께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의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의 기쁨과 즐거움이 생길 수 있습니다. 즉 한 개인(‘1’)이 한 이웃(‘1’)에 대해 나와 같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는다면, 우리(‘11’)가 되는 신비한 일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이런 사람들 11명이 다른 11명과 합칠 때는, 산술적 계산으로 22배가 아닌, 심리 사회학적 그리고 상징적 계산으로 ‘11+11=1111’배가 되고, 마찬가지로 ‘111+111=111111’ 등이 됩니다.

이것이 실현된다면 가장 많은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어떤 혜택을 받게 될까요?

전 세계 모든 사람이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 이외의 모든 사람들(이웃)을 경쟁상대, 비교 상대로 생각할 때는 그들이 비우호적 관계에 있으므로 늘 불안하고 힘든 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매일 꾸준히 잠시 시간을 내어, 양손을 모으고, 내 이웃이 나처럼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간절히 의식적으로 품기 시작하면, 자신의 내면에 평화가 임하고, 결국에는 자신이 싫어하던 이웃에 대해서도 좋은 감정을 갖게 되어 서로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호적으로 변화된 이웃과의 관계에서 생기는 사랑과 기쁨과 즐거움, 환희가 충만한 삶,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 이웃(1)을 나(1)처럼 생각함으로써 우리(11=1+1)가 되는 기적의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웃을 나처럼 생각하는 개개인이 늘어날수록 사회, 국가, 세계의 모든 문제도 자연스럽게 근본적으로 해결될 것으로 믿습니다.”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에게 대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그럼 누가 최초로 사람 돕는 일을 했을까요?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최초로 사람 돕는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최초의 사람, 아담을 창조하고 에덴동산에서 살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돕는 사람, 즉 그의 짝이 없는 것을 보시고,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후에 아담의 갈빗대 하나를 뽑아 그 갈빗대로 여자(하와, 이브)를 만드셨습니다. 이 정도 이야기는 일반인들도 잘 아는 내용입니다. 그럼, 이 내용이 성경에는 실제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 보겠습니다.

창세기 2 15절에서 25 (표준새번역 성경): 주 하나님이 사람을 데려다가 에덴 동산에 두시고, 그 곳을 맡아서 돌보게 하셨다. 주 하나님이 사람에게 명하셨다.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는, 네가 먹고 싶은 대로 먹어라.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어서는 안 된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주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를 돕는 사람, 곧 그에게 알맞은 짝을 만들어 주겠다.” 주 하나님이 들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를 흙으로 빚어서 만드시고, 그 사람에게로 이끌고 오셔서, 그 사람이 그것들을 무엇이라고 하는지를 보셨다. 그 사람이 살아 있는 동물 하나하나를 이르는 것이, 그대로 동물들의 이름이 되었다. 그 사람이 모든 집짐승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다. 그러나 그 남자를 돕는 사람, 곧 그의 짝이 없었다. 그래서 주 하나님이 그 남자를 깊이 잠들게 하셨다. 그가 잠든 사이에, 주 하나님이 그 남자의 갈빗대 하나를 뽑고, 그 자리는 살로 메우셨다. 주 하나님이 남자에게서 뽑아 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여자를 남자에게로 데리고 오셨다. 그 때에 그 남자가 말하였다. “이제야 나타났구나, 이 사람!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고 부를 것이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것이다. 남자와 그 아내가 둘 다 벌거벗고 있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남자(아담)의 갈빗대 하나로 최초의 여자를 만드셨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많은 논란이 있습니다. 여자들은 자신들이 남자의 갈빗대 하나로 만들어졌다는 점에 대해 불쾌감을 드러냅니다. 여자들은 남자의 일부로 취급되기를 싫어합니다. 남자의 일부라고 인정하면, 여자들이 남자보다 열등하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자의 갈빗대 하나로 여자를 만들었기 때문에 남자의 갈빗대가 여자의 갈빗대보다 한 개 적다는 오해가 교회에 널리 퍼져있기도 했습니다. 저도 예전에 그렇게 믿었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오해는 잠시만 생각하면 다 풀립니다.

만일, 아담의 갈빗대를 빼서 여자를 만들었기 때문에, 남자들의 갈빗대가 여자보다 한 개 적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져야 합니다. , 사고로 손가락이 잘린 사람의 자식들은 모두 손가락이 하나 없이 태어나야 합니다. 그런데, 사고로 손가락을 잃은 사람의 후손도 정상적인 사람의 후손과 똑같이 완전한 손가락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따라서, 아담의 갈빗대를 빼내어 여자를 만들었기 때문에 남자의 갈빗대가 하나 부족하다는 것은, 전혀 사실무근입니다. 해부학에 의해 남녀의 갈빗대 개수가 같다.”라는 사실은 예전에 확인되었습니다.

현대 의학은 사람의 몸 안에는 206개의 뼈가 있고, 그중에 오직 24개의 갈빗대만이 재생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따라서, 아담은 갈빗대가 뽑혔어도, 그 갈빗대에 해당하는 뼈가 다시 재생되어 24개의 갈빗대를 유지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처럼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 쓰시는 하나님의 배려는 우리의 생각을 초월합니다.  

위에 언급한 성경 내용에 따르면, 하나님은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아 보여서 돕는 배필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은 여자를 만들기 위해 최초의 남자(아담)를 깊이 잠재운 다음 아담의 갈빗대 하나를 뽑았습니다.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여자를 쉽게 창조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여자를 아담처럼 흙으로 만드시던지, 해와 달과 동식물처럼 말씀으로 창조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굳이 아담을 깊이 잠재운 후 아담의 갈빗대를 뽑아서 그것으로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이 여자를 만들기 위해 번거롭게 남자를 잠재운 다음 갈빗대 하나를 뽑아서 여자를 만든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여자를 만들 때,
왜 번거롭게 남자 갈빗대를 뽑아서 만드셨을까?


우리는 중요한 일을 할 때, 남다른 신경을 쓰고, 가능하면 좋은 재료를 사용합니다. 번거로운 수고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손님을 대접할 때는 평소에 먹던 음식이 아닌 가장 좋은 재료로 특별한 음식을 만들어 대접합니다. 신혼여행 때는 일반 호텔이 아닌 좀 비싼 고급 호텔에 묵습니다. 중요한 모임에 참석할 때는 평소에 입지 않고 아껴 두었던 가장 고급스럽고, 멋있고 기품 있는 옷을 입습니다. 고급주택을 지을 때는 일반주택을 지을 때와는 달리 최고의 재료와 자재를 사용합니다. 예술가가 중요한 작품을 만들 때는 평소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고 더 많은 시간을 투입합니다. 그리고 드물기는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고치기 위해 자신의 신체 일부인 장기를 떼어 주기도 합니다.

아담이 소유한 것 중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아담은 에덴의 모든 것을 누렸습니다. 아담은 에덴의 모든 것을 누렸지만, 자신의 신체 이외에 에덴의 어떤 것도 소유하지 않았습니다. 아담에게 자신의 신체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신체 일부인 갈빗대 하나를 재료 삼아 여자(하와)를 만드셨습니다. 그만큼 여자는 남자에게 중요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여자가 남자의 갈빗대 하나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열등하다는 생각은 옳지 않은 생각입니다.

이처럼 여자는 남자에게 중요한 존재로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여자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는 데 필요한 존재입니다. 여자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는 데 필요한 존재라니, 이게 무슨 말일까요?

실생활을 통해서 여자가 돕는 배필로서 남자에게 필요하고 중요한 존재임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여자와 남자는 상호 보완적인 존재로서 서로에게 매우 중요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는 데 여자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성경 내용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성부, 성자, 성령)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서로에게 이런 말씀을 하시면서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창세기 1 26-27 (표준새번역 성경):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 그리고 그가,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 위에 사는 온갖 들짐승과 땅 위를 기어 다니는 모든 길짐승을 다스리게 하자하시고,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으니,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실 때,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내 형상을 따라서라고 말씀하지 않고,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라고 말씀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세 위격(位格), 즉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으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할 때 우리의 형상을 따라서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삼위의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어떤 관계이기에 우리라고 하셨을까요?

우리라는 관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긴밀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어야 합니다. 긴밀한 관계가 아니라면, ‘우리라고 하지 않고 이라고 합니다. 긴밀한 관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서로를 연결하는 끈이 필요하고, 그 끈은 사랑입니다. 삼위의 하나님인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은 사랑의 끈으로 상호 간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혼연일체가 되는 관계를 이루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관계, 즉 사랑의 끈으로 연결되는 혼연일체의 관계로 존재하는 하나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만들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남자와 사랑의 끈으로 연결되어 긴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함으로써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되었습니다. 남자와 여자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할 때, 진정한 우리의 관계가 형성됩니다. 이는 아버지 하나님, 아들 하나님, 성령 하나님이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우리를 이루시는 모습과 같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우리라는 복수적인 관계가 한 몸, 즉 일체라는 단수적 관계로 승화될 때, 자녀가 잉태되고, 이로써 가족이 창조됩니다.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속성인 창조 능력을 자연스럽게 받았습니다. 창조 능력은 -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 하나님을 빼놓고 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함께 창조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인간과 함께 창조하실 때, 잠을 통해 개입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자를 창조하실 때도 그랬습니다. 하나님은 여자를 만들기 위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셨습니다. 아담은 영문도 모르고 깊이 잠들었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잠은 하나님이 있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자를 만들기 위해 처음으로 아담을 잠들게 하셨습니다. “아담을 잠들게 하셨다.”라는 문장에 따르면, , 특히 깊은 잠은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따라서, 깊은 잠을 원하시는 분들은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전능(全能)하시다면, 하나님은 아담을 잠재우지 않고도 아담의 갈빗대를 뽑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아담을 굳이 잠재운 다음 갈빗대를 뽑았을까요?

전능(全能)하신 하나님은
왜 굳이 아담을 잠재운 후 갈빗대를 뽑았을까요?


하나님은 아담에게 특별한 선물을 주기 원하셨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려고 준비할 때, 보통은 상대방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선물을 줄 때, 선물 받는 상대방이 깜짝 놀라면서 기뻐하는 모습을 보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속성, 즉 선물을 준비할 때 상대방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려는 인간의 속성도, 하나님이 물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돕는 배필로서 여자를 특별한 선물로 주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두 눈을 뜨고 있을 때는 선물의 준비 과정이 다 노출되기 때문에 하나님은 아담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조치가 필요하셨습니다. 이런 조치가 필요한 이유는 선물의 재료를 아담의 몸으로부터 취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은 아담 몰래 숨어서 선물을 준비하셨을 것입니다.

아담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면서, 동시에 선물의 재료인 갈빗대를 뽑기 위해서는, 아담이 어떤 느낌도, 의식도 갖지 말아야 했습니다. 이것에 적합한 것이 깊은 잠입니다. 우리는 깊은 잠을 자는 동안 아무런 느낌과 의식이 없게 됩니다. 어떤 분은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잠이 든 상태라도 누군가 건드리거나 흔들면, 잠에서 깨어나 의식이 되살아나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갈빗대까지 뽑아내는 큰 수술과 같은 작업에서는 통증까지 수반될 텐데, 아담이 어떻게 잠을 계속 잘 수 있습니까?”

이에 대한 답변은 마취제를 발견한 이야기, 그리고 모기(mosquito)와 거머리가 피를 빨아먹는 과정을 설명하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영국에 심프슨(1811~1870)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의과대학 교수였던 심프슨은 성경의 내용을 신뢰하고 있었습니다. 심프슨은 수술 중 환자들이 받는 고통을 매우 가슴 아파해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심프슨은 하나님이 아담을 잠재우시고 갈빗대를 뽑아 여자를 만드셨다.”라는 성경 내용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심프슨은 이 성경 내용을 염두에 두면서, ‘하나님께서 아담을 잠재우셨듯이 환자를 잠재운 상태에서 고통 없이 수술을 무사히 끝낼 수는 없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고민에 있었던, 심프슨 마취제의 개발에 큰 노력을 기울였고, 마침내 그 뜻을 이뤘습니다. 심프슨은 성경 내용에서 영감을 얻어, 클로로폼(Chloroform)이라는 마취제를 발견했습니다.

한편, 모기에게 물려본 사람은 잘 아시겠지만, 모기가 피를 빨아 먹는 동안에는 아무런 느낌을 받지 못하다가 모기가 떠난 후에야 가렵고 아픈 통증을 느낍니다. 거머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거머리는 사람에게 달라붙어서 피를 빨아먹습니다. 거머리가 피를 빨아먹는 동안 사람은 눈치를 못 챕니다. 그러다가 거머리가 떨어진 후에야 가렵고 아픈 통증을 느낍니다.

위 내용을 통해서, 마취된 상태에서는, 깊은 잠을 잘 때처럼, 의식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깊은 잠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일종의 마취제입니다. 또한, 보잘것없는 생물인 모기와 거머리도 사람이 눈치채지 못하게 하면서 자신들의 식사(?)를 완수한다면,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아담이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하면서 갈빗대 하나를 뽑는 일은 식은 죽 먹기처럼 쉬운 일입니다.

깊은 잠은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일종의 ‘마취제’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하면서 갈빗대 하나를 쉽게 뽑으실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아담이 하나님의 작업을 볼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이런저런 이유로 하나님은 아담을 깊이 잠들게 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그것은 아담이 잠든 상태에서 갈빗대 하나를 뽑히는 대수술(?)을 당했어도, 깨어난 후에 통증을 느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취 상태에서 깨어난 환자는, 수술 후의 통증을 느끼고, 모기 또는 거머리에게 피를 빼앗긴 사람은 나중에 가려움과 통증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란, 하나님이 아담을 잠재운 상태에서 갈빗대 하나를 뽑았어도 잠에서 깨어난 아담은 아무런 통증을 느끼지 않았지만, 마취제와 모기, 거머리의 경우에는 통증을 수반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창조주 하나님은 속성상 완전하시고 피조물은 불완전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속성상 완전하시기 때문에 행위 또한 완전하게 하시지만, 피조물들은 속성상 불완전하므로 그 행위 또한 늘 불완전합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잠재운 후, 비밀 작업을 통해 이브를 만드신 다음 이브를 아담에게 데리고 오셨습니다. 그러자 아담은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다.”라고 하면서 매우 기뻐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일상적인 것 보다 받는 사람이 깜짝 놀랄만한 최고의 선물을 주십니다(물론, 하나님은 평범한 것도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공급해 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선물의 재료를 다른 데서 취하지 않으시고, 선물 받을 사람이 가진 것 중에서 취하곤 하십니다. 아담의 갈빗대처럼 말입니다.

한편, 우리는 하나님이 아담의 갈빗대를 뽑기 위해 아담을 잠재우기 전, 아담에게 일을 시키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따르면, 하나님은 남자가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짝을 만들어 주겠다.”라고 말씀하신 후, 곧바로 여자를 만들기 위해 아담을 잠들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창조된 동물들을 아담에게 끌고 와서 아담이 그 동물들의 이름을 짓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잠재우기 전에 아담에게 일을 시키셨습니다.

아담은, 잠들기 전,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들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 때문에 아담은 피곤해졌고, 이에 따라 잠이 들 수 있는 최적의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제야 하나님은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셨고, 갈빗대 하나를 뽑아 그것으로 돕는 짝, 여자를 만드셨습니다.

위 내용을 통해서, 아담은 일을 한 후에 잠이 들었음을 알았습니다. 아담이 잠이 들기 전에 한 일은, 자신이 직접 찾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주시는 깊은 잠은 하나님이 시키거나 혹은 하나님이 주신 일을 한 후에 누릴 수 있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추측에 동의한다면, 우리는 불면증을 해결할 방법 하나를 찾을 수 있습니다.

많은 현대인이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불면증을 극복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불면증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수면제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면제는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수면제를 사용하면, 장기적으로 볼 때 몸에 해롭습니다.

불면증은, 잘 알다시피, ‘잘 기회가 있는데도 잠을 못 자는 증상입니다. 잠을 자고 싶은데, 잠을 못 자는 것이 불면증입니다. 일이 바빠서 잠을 못 자는 것은 불면증이 아닙니다. 그러나, 잠이 들기 어렵거나, 자다가 자주 깬다거나, 너무 일찍 잠을 깨거나, 충분히 잤는데도 계속 졸릴 때는 불면증입니다. 하루 3~4시간 밖에 못 자는 데도 아무 지장이 없다면 불면증이 아닙니다.

불면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낮에 졸려도 막상 자려고 하면 잠을 잘 수 없습니다. 불면증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은 몸이 항상 피곤하고, 짜증을 잘 내며, 지속해서 정신을 집중할 수 없고,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식은땀을 잘 흘리고, 이유 없이 몸의 여기저기가 아프기도 합니다. 이처럼 고통스러운 불면증을 속 시원하게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요?

고통스러운 불면증을
속 시원하게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제가 제안하는 불면증 해결 방법을 말씀드리기 전에, 참고로 현재까지 알려진 불면증의 종류와 원인, 치료 방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그다음 잠에 숨겨진 비밀에 근거한 불면증 해결 방법을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불면증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일시적 불면증입니다. 일시적 불면증은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 보았을 불면증입니다. 이 불면증은 며칠 또는 12주 동안 일시적으로 잠을 못 자는 경우입니다. 일시적 불면증은 중요한 시험을 앞둔 때나, 부부싸움을 한 후처럼 스트레스 요인 때문에 나타나거나, 생활환경 등 일상적인 수면 습관에 변화가 있을 때 나타납니다. 일시적인 불면증은 스트레스의 원인이 해소되면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불면증이 몇 주 이상 지속하거나 심할 경우 몇 달에서 몇 년까지 지속하는 때도 있습니다. 이런 불면증은 만성 불면증입니다. 만성 불면증은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만성 불면증의 종류는 다양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학습된 불면증입니다. 학습된 불면증은, 일시적인 불면 증상을 경험한 후 또 잠이 안 오면 어쩌나?’하는 걱정에 사로잡혀 잠을 반복적으로 못 자는 불면증입니다. 학습된 불면증 상태에서는, 잠을 자야겠다는 노력과 강박관념이 오히려 자율신경을 흥분시켜 잠을 잘 수 없게 만드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몸이 편치 않은 것 역시 만성적인 불면증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수면무호흡증, 천식, 소화 궤양, 편두통 등 신체에 이상이 생긴 경우, 통증, 신체적인 불편, 불안, 우울 등이 뒤따라 오고, 이 때문에 만성 불면증이 올 수 있습니다.

불면증을 해결하려는 방법에는 약물적 방법과 비약물적 방법이 있습니다. 약물적 방법은 수면제와 같은 약물을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수면제로 가장 널리 쓰이는 것은 벤조다이아제핀(benzodiazepine) 계통의 약으로, 이 계통의 약은 쉽게 잠들 수 있게 도움을 줍니다. 그 외에 진정제, 항우울제, 멜라토닌(melatonin), 항히스타민제 등이 수면제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이 약들은 내성과 의존성, 금단증상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비약물적 방법은 적절한 행동과 환경을 통해 불면증을 치료하는 방법입니다. 대표적인 비약물적 치료 방법은 수면 습관 조절을 통한 방법입니다. 수면 습관 조절 방법의 일 예는 침실은 잠자는 데만 사용한다.”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도서관에선 책만 보듯이, ‘침실에선 잠만 잔다는 것입니다. 수면 습관 조절 방법의 다른 방법들로, 실제 자신이 잤다고 생각하는 시간 외에는 잠자리에 들지 않는 수면 제한 요법’, 낮잠은 가능한 피하면서 아침에는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는 습관들이기 방법 등이 있습니다.

좀 역설적인 방법도 있습니다. ‘잠을 안 자려고 노력하기가 한 예입니다. 불면증 환자들은 잠이 안 올까 봐 불안해하며, 잠을 자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곤 합니다. 그런데 역설적 방법을 이용하면, 그런 고통 없이 잘 수 있습니다. 그 밖에, 낮에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따뜻한 물에서 자주 몸을 이완시켜주는 것도 불면증 치료의 좋은 방법입니다.

지금까지 현재 세상에 알려진 불면증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개략적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다양한 불면증 해결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면증 환자가 줄어들기는커녕 증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마도 이러한 불면증 해결 방법들이 모두 불완전하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그럼, 이제부터는 잠에 숨겨진 비밀을 통해 불면증을 완전히 해결할 방법을 제안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문제 자체에 집중할수록 그 문제를 풀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무대 공포증이 있는 사람이 무대에 섰을 때, 긴장하지 않으려고 긴장 그 자체에 마음을 집중하면 더 긴장하게 됩니다. 수영을 못하는 사람이 물속에 빠지지 않으려고 허우적대면, 더 빠르게 물속으로 빠져듭니다.

이런 예도 있습니다. 서커스 공연에서 저글링(Juggling)’이란 묘기를 볼 수 있습니다. 저글링은 여러 개의 공을 끊임없이 공중에 던져 올렸다가 받고, 다시 던져 올렸다가 받는 묘기입니다. 뛰어난 저글링 공연자는 상당히 많은 공을 던지고 받을 때, 정면만을 응시해야 합니다. 저글링 공연자가 움직이는 여러 개의 공을 따라 얼굴이나 고개를 움직이면, 그 순간 공을 받지 못하고 공을 떨어뜨리게 됩니다. 저글링 공연자에게, 움직이는 공이 문제입니다. 따라서, 저글링 공연자가 움직이는 공에 집중하면, 공연을 망칩니다.

불면증도 마찬가지입니다. 불면증 자체에 관심을 집중할수록 불면증을 해결할 방법을 찾기 어렵습니다. 잠이 오지 않을 때, 잠을 자려고 노력할수록 정신이 더욱 말똥말똥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문제 자체에 관심을 집중할 때의 폐해는, 다음과 같은 모습을 상상하면 더 분명해집니다.

저글링 공연자가 움직이는 공에 집중하면 공연을 망치듯이, 불면증도 그 자체에 집중하면 잠을 망칩니다.


아이가 개에게 쫓기고 있습니다. 개는 아이가 겁을 먹도록 아이를 쫓아가면서 계속 짖어댑니다. 어느 순간 아이는 이렇게 개에게 쫓겨 도망하는 것이 개를 따돌릴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는 용기를 내어 개와 맞서 싸우기로 결심합니다. 아이는 뒤돌아서서 쫓아 오는 개를 붙들고 한바탕 치열한 싸움을 합니다. 싸움 결과는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결과에 상관없이 아이는 어느 정도 상처를 입습니다.

개는 우리 인생에서 만나는 문제입니다. 인생의 다양한 문제는 우리를 집요하게 따라다닙니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용기를 내어 그 문제와 맞서 싸웁니다. 그러나 문제는 지칠 줄 모르고 달려들기 때문에 우리는 문제로부터 상처를 받습니다.

개의 비유에서 아이가 용기를 내어 개와 싸우는 것을 가정했지만, 이런 가정은 책 혹은 처세 강연 등에서나 소개됩니다. 실제로 아이가 개에게 쫓기는 상황에서 개와 맞서 싸우기로 마음을 바꾼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럼, 개에게 쫓기는 아이가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개를 쫓아낼 힘이 있는 존재(예를 들면, 아빠)를 개입시키면 됩니다. 이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가 쉽지 않고, 해결할 수 있다고 해도 큰 대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손에 가시가 찔리면 스스로 쉽게 뽑을 수 있으므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특별히 타인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몸속에 생긴 암세포는 전문의사가 수술하지 않는 한 제거할 수 없으므로 이것은 문제가 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암세포를 제거할 수 있는 전문의사가 필요합니다.

불면증도 마찬가지입니다. 불면증은, 현재로선, 스스로 해결하기가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따라서, 불면증에 시달릴 때는 불면증을 쫓아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존재에게 부탁해야 합니다. 그런데 누가 불면증을 해결할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까?

의사일까요? 정신분석학자 또는 심리학자일까요? 물론, 이들도 - 비유적 표현으로 - 불면증의 바다에 빠진 사람을 일시적으로 건져낼 수 있지만, 영구적, 근본적으로 건져낼 수 없습니다. 불면증의 바다에 빠진 사람을 건지기 위해서는 불면증의 바다에 구조선을 타고 있어야 하는데, 불면증의 바다에 있는 구조선이, 현재로선, 영구적이지 않을뿐더러 파도에 휩쓸려 표류할 수 있고 침몰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불면증의 바다에 빠진 사람을 건져낼 수 있는 진정한 능력자는, 불면증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사람을 - 비유적 표현으로 - 바다 위 하늘로 끌어 올려 구름에 눕힐 수 있는 존재여야 합니다. 이런 존재는 제가 알기로는 신적인 존재, 즉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분이라면, 불면증을 쫓아 달라고 하나님께 부탁하여 불면증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이 방법이 불면증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탁월한 방법이 분명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상당한 믿음의 내공(?)이 필요하고, 또한 하나님께서도 이 방법보다는 아래의 방법으로 불면증을 해결하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불면증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방법을 통해 불면증을 해결하기를 바라십니다. 불면증을 해결하기 위해 불면증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어떤 것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까요?

일상생활의 주어진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가 앞에서 보았듯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기 전에, 하나님이 아담에게 시키신 일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담이 그 일을 한 후에 하나님께서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시키신 일을 하고 나면, 잠은 아주 자연스럽게 오는데, 이것은 성경이 보증하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가 하는 일이 하나님이 시키신 일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아담은 자기가 하는 일이 하나님이 시키신 일인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요?

우리가 하는 일이 하나님이 시키신 일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아담은 하나님이 자기에게 동물들을 데리고 왔을 때, 동물들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아담은 동물들의 이름을 짓는 일이 하나님이 원하시는(또는 시키시는) 일임을 알았습니다. 아담은 자기가 하는 일의 현장에 하나님이 함께하고 계심을 통해 자기가 하는 일이 하나님이 시키는 일이라고 확신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도(특히, 기독교인 경우) 우리가 하는 일이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는 힌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 가운데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다면, 그 일은 틀림없이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것에 대한 논의는 많은 신학적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실생활에서는 마음에 평안함이 있느냐?”, “양심에 거리낌이 없느냐?”,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있느냐?”로 하나님 임재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만일, 일하는 가운데 평안함이 있으면, 그 일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평화, 평안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일을 하면서 마음에 평안함이 없다면 - 예를 들어, 거짓말을 한다든가, 사기를 친다든가, 도둑질한다든가, 또는 간음한다든가 등과 같은 짓을 할 때처럼 - 그 일에는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그 일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인지 아닌지,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에게 대접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가 하는 일을 이웃을(여기서 이웃은 나 이외의 다른 모든 것, , 자연, 환경, 민족, 나라 등도 포함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면, 그 일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입니다. 환경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변의 쓰레기를 깨끗이 치우면, 그 일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일할 때,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타인 혹은 다른 대상을 위해 한다면, 그 일 또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입니다. 사장이 월급을 올려주기를 바라기 전에 먼저 자신이 사장의 마음을 가지고 회사 일을 자기 일처럼 열심히 하고, 회사의 지출을 줄이기 위해 종이 한 장이라도 아끼고, 점심시간에 전등과 모니터를 꺼서 절전한다면, 이런 일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은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 됩니다. 왜냐하면,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남을 위해 일하면, 상대방도 어떻게 해서든지 보답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서로를 대접하려는 가운데 둘 사이의 관계는 긴밀해집니다. 둘 사이의 관계가 긴밀해지면, 일의 효과가 상승하고, 일의 효과가 상승하면, 그에 따른 상당한 이익이 자신에게도 옵니다. 그렇지만,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어떤 일을 할 때, 나중에 자신에게도 이익이 온다는 점을 염두에 두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이해 타산적인 속마음을 가지고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일을 한다면, 상대방을 어느 정도 속일 수 있지만, 나중에는 모든 것이 탄로 나게 되어 실망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부패와 타락을 방지하고, 세상에서 살맛 나게 하는 소금과 같은 일 역시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입니다. 정직하게 세금 내는 일; 부정부패를 방지하는 일; 낙심하고 있는 사람에게 꿈과 희망과 기쁨을 주는 일; 어려운 이웃에게 도움 주는 일 등은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입니다.

버스에서 노약자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일; 공공장소에서 쓰레기를 쓰레기통에 잘 버리고, 주변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는 일; 엘리베이터에서 먼저 인사하는 일; 공중도덕을 잘 지키는 일; 무거운 짐을 들고 가시는 할머니를 도와드리는 일; 항상 밝게 웃는 일 등은 작은 일 같지만, 세상을 밝히는 빛과 같은 일이므로, 이런 일들은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입니다.

위에서 예로 든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은 기독교인에게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지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이라고 해서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은 대부분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흐뭇해집니다.

한편, 하나님이 아담에게 시키신 일 중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동물들의 이름을 짓게 하셨습니다.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사람들이 어떤 물건의 이름을 지을 때, 그 물건의 속성이 잘 드러나도록 이름을 짓습니다. 예를 들면, ‘자동차는 스스로 움직이는 차라는 속성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컴퓨터는 계산하는 기계라는 속성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름을 지을 때는 그 대상의 속성과 특징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는 통찰력과 직관력이 필요합니다. 아담이 동물들의 이름을 지을 때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이 창조한 수많은 동물의 이름을 일일이 지었다는 것은 그만큼 아담의 통찰력과 직관력이 뛰어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능력에 맞는 일을 시키시거나, 일을 시키시기 전에 그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이는 아담이 각 동물을 부르면, 그것이 바로 그 동물의 이름이 된 사실에서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시키시는 일, 즉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했다면, 하나님은 그 일을 한 후에 깊이 잠들게 하십니다. 그리고 깊이 잠든 사람에게 개입하셔서 그 사람의 몸과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삶이 풍성해지도록 예비해 주십니다. 잠은 하나님이 사람의 삶에 개입하시는 일종의 통로입니다.

잠은 하나님이 사람의 삶에 개입하시는 일종의 통로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의 삶에 개입하실 때, 그 사람에게는 반드시 좋은 일이 생깁니다. 현실 생활에서도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찾아갈 때 그냥 가는 법이 거의 없습니다. 부모님이 타지에서 공부하는 자녀를 찾아갈 때, 먹을거리와 용돈을 풍성하게 가져가십니다. 친정엄마가 시집간 딸을 찾아갈 때도 반찬 등 각종 물건을 챙겨 가십니다. 회사 사장님이 공장을 방문할 때는 근로자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선물을 주시거나 회식비를 주십니다. 대통령이 시골 마을을 방문할 때는 마을에 필요한 것을 하사하십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잠자는 사람에게 오실 때도 잠자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 좀 더 정확하게는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것을 주십니다. 우리가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나면, 몸과 마음이 개운해지고 상쾌해지는 이유는 하나님이 그렇게 되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잠을 통해서 사람에게 가장 기본적인 휴식의 시간을 제공하시며, 기운을 회복할 힘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잠을 통해서 낮 동안에 활동하느라 사용한 에너지를 보충해 주십니다. 이 이외에도 하나님은 잠을 통해 여러 가지 일을 행하시는데, 그 예를 몇 가지 더 들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잠을 깊이 자는 동안 기억이 정리되고 영구화되게 하며, 이 과정을 통해 문제 해결에 새로운 통찰력이 생기도록 하십니다. 과학자들은 뇌가 잠을 자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것이 무언인가는 모두 밝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잠을 통해서 하시는 일의 영역은 여전히 신비의 영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은 잠자는 동안 새로운 아이디어와 창의적인 착상이 떠오르게 하십니다. 잠을 자는 동안 우리의 인생과 역사를 바꾼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뇌 정보 전달의 원천인 신경전달물질을 처음으로 증명하여 노벨 의학상을 받은 오토뢰비 박사는, 실험의 핵심 과정이 잠자는 사이 떠올랐다고 고백했습니다.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은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아이디어를 잠자는 동안 얻었고, 모차르트, 베토벤은 수많은 곡의 악상을 잠자는 동안 얻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잠자는 동안 새로운 아이디어와 창의적인 착상이 떠오르게 하십니다.


잠자는 시간에 새로운 아이디어와 창의적인 착상이 떠오르는 이유는 하나님이 관련 없어 보이는 정보들을 연결하여 새로운 연관을 만들어 내시기 때문입니다. 서로 잘 들어맞지 않을 것 같은 생각들과 기억들을 기묘하게 연결하는 것이 바로 창의성의 기본입니다. 이것은 서로 다른 이질적인 분야를 접목하여 창조적, 혁신적 아이디어를 창출해내는 메디치 효과(Medici effect)’란 이론을 통해서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또한, 옥스퍼드 대학의 포스터 교수는, 수면 부족은 창의성을 죽이지만, 숙면은 새로운 문제 해결책을 제공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일단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한 다음, 하나님께서 잠자는 동안에 해결책을 주실 줄 믿고 잠을 자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잠을 잘 자면 기억력이 좋아지는 이유도 하나님께서 필요한 기억이 잠자는 동안 뇌에 저장될 수 있도록 사람의 뇌를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최근에 뇌과학자들은 단어를 외우고 잠을 잔 그룹이, 잠을 잔 후에 단어를 외운 그룹 보다, 더 많은 단어를 기억했다.”라는 사실을 발표했습니다. 잠은 특정 사실, 경험적 사건 등을 기억해 내는 서술적 기억(declarative memory)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잠자는 동안 뇌가 과거 경험들에 의미를 부여하게 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가 잠자는 동안 단기기억이 장기기억이 되도록 하십니다. 더불어서, 하나님은 우리가 잠자는 동안 감정의 방어벽도 만들어 주십니다. , 하나님은 잠을 통해 감정의 회로가 새롭게 재 부팅되게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픈 기억도 자고 나면 말끔히 제거되어 새로운 도전에 맞설 힘이 생깁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에게 잠을 주시고, 우리가 자는 동안 우리의 몸과 마음에 개입하셔서 귀한 선물을 주신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이제부터 잠들기 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우리의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맡김으로써 평안하고 깊은 잠을 누린다면, 이전의 삶보다 더욱더 건강하고, 행복하고, 창의적인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여섯 번째 비밀: 아담의 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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